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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 업] ‘영원한 타인’이라는 오해

40여 년 전, 필자의 세 자녀가 어렸을 때의 일이다. 한인 가족인 우리는 종종 집 근처 레스토랑을 찾아 브런치를 즐기곤 했다. 어느 날, 나이가 지긋한 백인 여성 종업원이 아이들에게 “어디서 왔니(Where are you from)?”라고 묻자, 아이들은 자신 있게 “톨루카 레이크요(Toluca Lake)”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 여성은 고개를 저으며 다시 “아니, 원래 어디서 왔냐고(No, where are you really from)?”이라고 물었다. 이 질문은 당시 십대였던 큰딸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최근 발표된 2025년 STAATUS(Social Tracking of Asian Americans In The United States) 보고서를 통해, 당시 딸이 왜 분노했는지를 새삼 실감하게 됐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라난 시민권자 자녀들을 여전히 ‘외국인’으로 보는 시선은 현재까지도 존재하고 있다.   보고서는 미국인 약 4000명을 대상으로 ‘아시안·하와이 원주민·태평양 제도 출신 미국인(AANHPI)’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인의 40%가 “아시안 아메리칸은 미국보다 자신의 출신국에 더 충성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4명 중 1명은 “중국계 미국인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미국인의 48%는 자신이 아시안 아메리칸을 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아시안 아메리칸들은 49%가 욕설이나 모욕을, 36%는 괴롭힘을, 15%는 신체적 폭력을 지난 1년간 경험했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 사회가 아시안들을 여전히 ‘영원한 외부인(perpetual foreigner)’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25%는 아시안 아메리칸과 전혀 개인적인 접점이 없으며, 그들에 대한 인식은 정치인, 언론, 소셜 미디어 등을 통해 형성된다고 답했다.     특히 정치인의 견해에 영향을 받는 비율은 2021년 6%에서 올해 14%로 증가했다. 16~24세의 젊은층은 TikTok, YouTube, X(구 트위터)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아시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인식의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형성된 세 가지 고정관념이 자리잡고 있다.   첫째는 ‘모범 소수(model minority)’라는 이미지다. 이는 아시안들이 열심히 일하고, 고등 교육을 받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했다는 긍정적 편견과 동시에, 타 소수 인종과의 경쟁 구도를 유도하는 부작용도 있다.   둘째는 ‘황화론(Yellow Peril)’이다. 이는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미국의 문화를 위협한다는 잘못된 인식이다. 셋째는 ‘영원한 타인(perpetual foreigner)’이라는 시선으로,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아시안 시민들도 언제나 ‘외국인’ 취급을 받게 만든다.   다행스러운 점은, 미국인의 80%가 다음의 방법들을 통해 아시아계 미국인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가장 많은 응답자(41%)들이 아시아계 미국인의 역사와 그들이 미국 사회에 이바지한 공로를 학교 교육 과정에 포함하도록 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 38%는 학교와 지역 사회에 세금을 활용한 재정을 투자하여 아시아 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줄 것을 기대했다. 뿐만 아니라 아시아계를 차별하는 가해자를 처벌하는 기관을 설립해야 한다는 답도 36%에 달했다.   필자는 하이킹을 하며 만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피부색이나 인종에 상관없이, 같은 나라에 사는 시민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믿음 때문이다. 미국은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더 나은 미래를 만들겠다는 이상 위에 세워진 나라다. 그 초심을 되찾기를 기대한다. 수잔 정 / 소아정신과 전문의오픈 업 영원 오해 아시안 아메리칸들 동아시아계 이민자들 perpetual foreigner

2025-06-04

[중앙시평] 이민의 역사는 반복된다

불법이민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자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우리 조상들은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민 왔는데, 너희들도 법을 지켜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 특히 이민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이 100, 200년 전 미국에 이민 왔을 때는 ‘이민법’이라는 게 아예 없었고, 따라서 합법 이민, 불법이민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예일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이민: 미국의 역사(Immigration: An American History)’라는 책은 현재 미국의 이민 문제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사실은 여러 차례 되풀이된 일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 직후만 하더라도 이민법은커녕, 미국 시민에 대한 법률 규정도 없었다. 건국 5년 후에 제정된 시민권법(Naturalization Act of 1790)은 일단 미국에 도착해 2년을 살면 시민권을 주었다. 물론 ‘도덕적인 품성을 갖춘 자유민 백인’에게만 시민권을 준다는 인종차별적 조건도 빼놓지 않았다.     남북전쟁 후 노예해방을 위해 제정된 1866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66)은 흑인에게 시민권 부여를 허가했지만, 중국인 등 아시아계는 거주할 권리만 주어졌을 뿐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는 없었다. 중국계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898년 연방대법원의 ‘United States v. Wong Kim Ark’ 판례부터였다. 이렇게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합법적 미국인’이 될 길이 원천봉쇄됐던 것이 미국 이민법의 역사다.   이 책의 저자인 하샤 다이너 뉴욕대 역사학 교수에 따르면,  1차대전 직후 몰려드는 중국, 일본, 한국계 이민자들을 노란색 위험(yellow peril)이라며 경계했다. 결국 미 의회는 잇단 반이민법을 통과시킨다. 1920년 긴급 이민쿼터법(Emergency Quota Act)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민 쿼터를 엄격하게 제한했고, 1924년 아시안 배제법(Asian Exclusion Act)은 이들 국가의 이민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동 7개 국가 입국 금지 명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미국 영사가 이민 희망자를 인터뷰하고 비자와 영주권을 발급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부터다. 미국 입국 전부터 법적 장벽이 생긴 것이다. 다이너 교수는 “비자와 인터뷰가 생기면서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출국한 유대인들의 미국 입국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며 “그런 유대인들이몇 년 후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지 상상해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알바니 대학 칼 본 템포 교수에 따르면, 멕시코 국경 문제도 원래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미국-멕시코 국경 경비는 동네 경찰이 했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다. 국경 경비가 강화된 것은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 등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캐러밴 행렬도 미국 역사에 몇 번이나 반복되던 일이다. 19세기 중반 아이리시 이민자들은 감자 전염병 창궐로 굶주림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이민을 시도했고, 1890년대에는 이탈리아 북부 흉작으로, 1850년에는 리투아니아의 기아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왔다. 오늘날 경제난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남미 국민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 국가의 출신 조상을 둔 백인들이 멕시코 국경 캐러밴을 ‘밀입국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구리 올챙이 때 모르는 꼴’이다.   템포 교수는 “미국의 이민제도는 절대 불변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것이며 우리가 고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들의 의지를 모으면 투표와 정치 참여로 더욱 좋은 이민법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종원 / 변호사중앙시평 이민 역사 동아시아계 이민자들 한국계 이민자들 긴급 이민쿼터법

2022-10-05

[중앙시평] 이민의 역사는 반복된다

불법이민자들을 모조리 감옥에 집어넣자는 사람들이 많다. 특히 백인우월주의자들은 “우리 조상들은 미국에 합법적으로 이민 왔는데, 너희들도 법을 지켜라”는 소리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역사, 특히 이민의 역사를 알게 된다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조상이 100, 200년 전 미국에 이민 왔을 때는 ‘이민법’이라는 게 아예 없었고, 따라서 합법 이민, 불법이민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예일대학 출판부에서 나온 ‘이민: 미국의 역사(Immigration: An American History)’라는 책은 현재 미국의 이민 문제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며, 사실은 여러 차례 되풀이된 일임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미국 건국 직후만 하더라도 이민법은커녕, 미국 시민에 대한 법률 규정도 없었다. 건국 5년 후에 제정된 시민권법(Naturalization Act of 1790)은 일단 미국에 도착해 2년을 살면 시민권을 주었다. 물론 ‘도덕적인 품성을 갖춘 자유민 백인’에게만 시민권을 준다는 인종차별적 조건도 빼놓지 않았다.     남북전쟁 후 노예해방을 위해 제정된 1866년 민권법(Civil Rights Act of 1866)은 흑인에게 시민권 부여를 허가했지만, 중국인 등 아시아계는 거주할 권리만 주어졌을 뿐 시민권을 취득할 권리는 없었다. 중국계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게 된 것은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1898년 연방대법원의 ‘United States v. Wong Kim Ark’ 판례부터였다. 이렇게 백인이 아닌 이민자들은 ‘합법적 미국인’이 될 길이 원천봉쇄됐던 것이 미국 이민법의 역사다.   이 책의 저자인 하샤 다이너 뉴욕대 역사학 교수에 따르면,  1차대전 직후 몰려드는 중국, 일본, 한국계 이민자들을 노란색 위험(yellow peril)이라며 경계했다. 결국 미 의회는 잇단 반이민법을 통과시킨다. 1920년 긴급 이민쿼터법(Emergency Quota Act)은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이민 쿼터를 엄격하게 제한했고, 1924년 아시안 배제법(Asian Exclusion Act)은 이들 국가의 이민을 원천 봉쇄해버렸다. 트럼프 행정부 시절 중동 7개 국가 입국 금지 명령과 놀랍도록 유사하다.   미국 영사가 이민 희망자를 인터뷰하고 비자와 영주권을 발급하기 시작한 것도 1920년대부터다. 미국 입국 전부터 법적 장벽이 생긴 것이다. 다이너 교수는 “비자와 인터뷰가 생기면서 1930년대 나치 독일의 탄압을 피해 출국한 유대인들의 미국 입국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며 “그런 유대인들이몇 년 후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지 상상해보라”고 지적했다.   이 책의 공동저자인 알바니 대학 칼 본 템포 교수에 따르면, 멕시코 국경 문제도 원래 심각한 것이 아니었다. 그에 따르면 1970년대만 해도 미국-멕시코 국경 경비는 동네 경찰이 했고 예산도 충분치 않았다. 국경 경비가 강화된 것은 9·11을 계기로 테러와의 전쟁, 그리고 마약과의 전쟁 등 정치적 이유 때문이다.     기후변화와 경제난으로 인한 이민자들의 캐러밴 행렬도 미국 역사에 몇 번이나 반복되던 일이다. 19세기 중반 아이리시 이민자들은 감자 전염병 창궐로 굶주림에 시달리다 미국으로 이민을 시도했고, 1890년대에는 이탈리아 북부 흉작으로, 1850년에는 리투아니아의 기아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몰려왔다. 오늘날 경제난으로 밀입국을 시도하는 중남미 국민과 다를 바가 없다. 이들 국가의 출신 조상을 둔 백인들이 멕시코 국경 캐러밴을 ‘밀입국자’라고 비난하는 것은 ‘개구리 올챙이 때 모르는 꼴’이다.   템포 교수는 “미국의 이민제도는 절대 불변이 아니고, 우리가 만든 것이며 우리가 고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대로, 한인을 포함한 이민자들의 의지를 모으면 투표와 정치 참여로 더욱 좋은 이민법과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이종원 / 변호사중앙시평 이민 역사 동아시아계 이민자들 한국계 이민자들 긴급 이민쿼터법

2022-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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